2012년, 다시 한번 유통산업을 생각해 보다. 연구기록



아직까지도 머릿속에서 떨어지지 않는 화두

2000년대 중반쯤에 테스코 홈플러스에 SSM을 활용하여 골목상권에 진출하는 방안에 대해서 제안을 했던 적이 있다. 회사에 직접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비공식적으로 넣었으니 오늘날 문제가 되는 건이 반드시 나랑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한동안 그 건으로 해서 꽤나 마음고생을 했다. 어차피 남들이 알아주는 고민은 아니지만 나름 심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내용은 이렇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 업계의 핵심적인 문제는 시장이 포화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형 점포가 들어설 곳은 다 들어섰고, 남은 것은 출혈경쟁 뿐인 상황. 이런 시점에서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장기적인 해결책, 이를테면 새로운 수익원을 얻기 위한 자원재조정 같은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단기적일지라도 심각하게 벌어질 head to head competition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면 업계 3위(2위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의 위치에서 당시에 겨냥하고 있던 시장에서의 quantum jump는 고사하고 그대로 고사해버릴 가능성도 있는 상황. 

이 때 매우 I/O 스럽게(가 맞는 표현인진 모르겠지만) 접근해서 나오는 방안은 slicing off. 대형 점포들이 점하고 있는 상권들 사이에 있는 빈 틈과 경쟁사가 점유한 상권의 외곽을 잘게 쪼개서 쪼개진 각 cell을 SSM 또는 보다 작은 점포로 점유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경쟁사의 점포가 필요한 매출의 경제규모를 구현하는 것을 막아 괴롭히면서 매대를 넓혀나갈 수 있다는 것이 요점이었다. 

이 즈음에 나는 경쟁전략에 푹 빠져 있었는데, 그래서 경쟁을 펼치는 대형 점포들만 보고 그 주변을 살피지 못했고, 그 주변이라는 것은 오늘날 생존권의 위협을 받고 있는 슈퍼마켓이었다. 이후 대체재라던가 하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은 해 왔는데, 아직도 주변을 살핀다는게 쉽지가 않다. 

내가 어느 만큼 책임이 있건 간에 이 건은 여전히 진행중이고, 합정동에서는 슈퍼마켓 업주들이 홈플러스 진출을 막기 위해서 천막을 치고 투쟁모드에 들어서 있고, 그렇게 된 지도 꽤 오래 되었다고 알고 있다, 더욱이 경제성장이 정체되는 현 시점에서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입은 점점 노골적이 되어가고 있고, 그 만큼 공정위를 비롯한 정부 당국의 간섭이 최소한 외견상으로는 강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 와중에 상생이라는 탈을 쓰지는 않았지만 언제든 쓸 수 있는 방안으로 가맹점 체제가 부각되었다. 대기업은 납품을 하고 가맹점이 된 점포는 그 곳에서 계속 장사를 이어갈 수 있다는 건데, 그 사이에 어떤 가치사슬을 구성해 놓았느냐가 이 모델의 지속가능성을 판별하는 핵심이 될 것이다. 슈퍼마켓 모델은 잘 모르겠으되, 편의점이나 빵집 모델을 보면 납품 외에 이것저것 받아가는게 있을 법도 싶다.

오며가며 발견한 이마트 가맹슈퍼(이전엔 코사마트 가맹점이었다.)


현재는 이런 모델이 제법 큰 규모의 슈퍼마켓들을 대상으로 먹혀들어갈 것이다. 이게 업주들에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Poter스러운 관점에서 일종의 Power Game의 결과인데, 대형업체가 supply chain의 상류로 올라가서 수직적 계열화로 위협을 가할 때 업주들이 가질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상대방의 우산 아래로 들어가거나 죽을 때 까지 싸우는 것이 대표적일 것이다.) 요컨대 현재의 가맹점 체제는 업주들의 생존전략 차원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이루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 체제가 단기 내에 무슨 심각한 도전을 받을 것 같지는 않다. 마땅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추진할 주체가 없다. 이미 유통시장을 대기업이 장악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코사마트 같은 경우에도 대단한 추진주체가 있어서 대기업과 맞서 우위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무슨 Schumpeterian innovator가 나오지 않는 다음에야 여기서 대단한 진전이 있기 어려우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종의 lead를 만들어 나가자면, 현재 할인유통 강세의 시장구조에서 가맹점에 제공하는 상품의 단가로는 경쟁우위를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그 이상의 것은 결국은 추가적인 가치의 창출인데, 아마도 업주에 대한 서비스(이를테면 현대캐피탈이 한다고 광고하는 소비자 분석, 재무관리 서비스 같은)의 강화가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영역은 코사마트도 실패한 부분이고, 정부 지원을 받아서 만들어낸 온갖 제품과 서비스가 모조리 실패한 영역이며, 아마도 현재의 대형 유통업체들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방향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할인유통이 아닌 할인금융 쪽에서 시도할 만한 신사업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금융의 영역에서 벗어나 실물을 다룰 각오가 되어 있거나, 최소한 그런 업계의 싸움에서 진 개(이를테면 코사마트 같은)를 끌어안을 깜냥이 있다는 전제 하에서지만.

또 한가지 더 던져 보자면 대형점포를 중심으로 상권을 압박하는 현재의 대형업체의 골목상권 진출에 대하여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소규모 업체들의 연합이다. 이런게 잘 되면 합종연횡이라는 고사가 생기지도 않았을테지만, 상류에 강력한 교섭력을 가진 주체만 가져다 놓는다면, 그리고 상권분석에 대한 역량을 잘 갖추고 있다면 시도는 해볼만 할 것이다. epic fail이 될지라도 말이다. 



핑백

  • '명랑노트' Season 10. STRATEGIST : 상품공급점이 뭐 어때서? 2013-09-08 07:56:19 #

    ... 합니다만, 흥미롭게 지켜보는 산업동향을 그냥 보고 넘길수가 없군요. 어려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만 시도를 해 보겠습니다. 참고 [1] 2012년, 다시 한번 유통산업을 생각해 보다. by 명랑이 [2] 슈퍼마켓 산업에 대한 소고 by 명랑이 [3] SSM 진출의 당위성 by 명랑이 [4] SSM 갈등, 극한으 ... more

덧글

  • 2012/08/19 14:4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명랑이 2012/08/26 02:05 #

    광주시인가가 카운터를 멋지게 날렸더군요.
  • 계정없음 2012/08/19 20:02 # 삭제

    어차피 SSM은 외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걸 도입한 것 뿐인데요 뭘. 다만 외국이 원스탑 쇼핑으로 일주일 또는 한달정도의 생필품을 사는 것에 비해서 우리나라 할인점은 Depart와 Hyper가 섞인 괴상한 형태고, 대량이 아닌 동네에서 하루하루 편하게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골목상권까지 저 외국의 ssm개념을 핑계로 진입하기에는 너무 욕심이 컸다 하겠습니다. 애초에 외국과 한국의 상황이 너무 틀리잖아요. 같은 회사 마트끼리도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독과점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 슈퍼슈퍼마켓은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대기업의 너무 큰 욕심입니다.
  • 명랑이 2012/08/26 02:06 #

    한편으로 보면 저렇게 치고 들어가서 과연 수익이 날까 싶기도 합니다. 요즘 빵집들이 체인 아래로 들어갔더니 수익성 별로라고 도로 독립한다는 얘기도 있고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애드센스 #0

맞춤검색

애드센스 #2

ATTENTION!

정보공유라이선스

애드센스 #1